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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얻은 친청식구들
이름 동산가족센터 작성일 14-10-22 12:24 조회 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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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부부학교 입학식 날이 생각난다. 나는 찬송 한 절 따라 부르지 못하고 사람들의 간증도 듣지 못했다. 입학식 내내 절망스런 마음으로 앉아서 울기만 했던 나였다.
내게 지난 1년여 간의 결혼생활은 두 번 다시 살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길을 가다 웨딩드레스가 걸려있는 가게를 보면 눈물이 나서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땅만 쳐다보며 걸어 다녔다. 나를 불행하게 만든 저 웨딩드레스… 지켜지지 않을 약속들을 믿고 내가 선택한 바보같은 결혼…

결혼 얼마 전에 친정언니 네와 부모님의 돈 20억 정도를 사기 당하면서 이미 나는 많이 힘들었다. 매월 150만원 정도의 내 월급으로 여기 저기 급한 곳을 책임져야 했었다. 언니 가정은 당장 집이 없어져 버렸고 부모님은 평생 모은 모든 돈을 다 잃고 시골에 집 하나만 남게 되었다. 나 외에 식구 어느 누구도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가 되었다. 마음도 힘들고 몸도 힘들었다. 그래도 결혼할 남편이 있어서 나는 한편 행복했다. 다 없어도 이제 내가 사랑하는 한 사람을 만나서 희망이 있고 행복했다. 그래서 시골에 달랑 하나 남은 집을 담보로 부모님이 결혼자금을 만들어 주신 돈도 의심없이 받아서 결혼을 준비했다. 그 돈이면 작은 구멍가게라도 내서 나머지 6식구가 매달 얼마라도 벌 수 있었을텐데…나는 그 핏덩이 같은 돈을 받아서 남편을 선택하고 결혼 자금으로 썼다.
2004년 6월 직장동료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그때 나는 30세, 남편은 29세였다. 남편은 그때 직업이 없는 상태였다. 처음에 직업이 없는 것과 외아들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남편은 자기는 부모님에게서 너무나 독립적이어서, 좀 덜 독립적이어야 할 지경이라고…
그리고 작은 가게를 할 거라고 했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쓰고 있는 것 같았지만 오래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6개월이 다 지나도록 남편에게서는 아무런 일의 진전이 없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교회에서 매년 가는 청년부 단기선교를 다녀오겠다며 훌쩍 떠나버렸다.
선교여행을 다녀오고 또 다시 약속한 기한들이 몇 번이나 지나도 가게는 준비되지 않았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나의 결혼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매번 약속을 어기고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라고…결혼은 신뢰가 중요한 것이라고…' 그러나 나는 미련하게 그냥 사람이 좋아서 헤어지지 못했고 부모님께 남편이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결혼을 하겠다고 단호히 말씀드렸다.

그러나 찬바람이 부는 겨울 날들, 결혼준비를 하면서 나는 또 다시 많이 상처받았다. 결혼하면 나의 회사 근처에 집을 얻겠다 하던 남편의 말은 온데간데없고 시어머니가 알아본 시댁 근처의 몇 개의 집에서 집을 골라야만 했다. 웨딩샵을 다니며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할 때도 남편은 누군가와 계속 통화하고 문자를 보내느라 내가 입는 웨딩드레스에는 시선도 두지 않았고, 내가 모르는 또 다른 핸드폰이 남편의 바지 속에서 울릴 때 우리의 결혼이 매우 어리석은 짓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우리 결혼을 위해 3개월만이라도 같이 새벽기도를 다니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러자고 했다. 그러나 새벽기도를 몇 번 다니지도 못한 어느 날 새벽, 우리 집에 와 있던 남편의 옷 속에서 남편의 핸드폰이 울렸다. 처음에 남편은 알람이 울린 거라고 했다. 그러나 곧 문자메세지가 왔고, 내용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자매가 자기 새벽기도 가야 하는데 차가 없으니 데리러 오라는 문자였다. 나는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결혼준비를 위해 같이 하기로 한 나와의 새벽기도는 몸이 피곤해서 힘들다던 남편이 다른 자매와 새벽기도를 서로 픽업해주며 다니기로 약속했다니…남편 앞에서 소리치며 펑펑 울었다. 그러자 남편은 도리어 내게 막 소리를 질러댔다.
비참했다. 나의 선택이, 나의 교만이 후회됐다. 이후로 나는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다. 남편 외엔 모두 나의 선택을 반대 하던 사람들이라 나의 힘듦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남편을 만난 뒤 두 번째 만난 겨울 어느 날, 뭔가를 계속 감추고 속이고 있는 기분이 드는데 그런 것 없다고 안심시키던 내게, 남편은 어느 날 또 다시 단기선교를 가야겠다고 했다. 이번엔 부모님도 함께 간다고, 선교 팀에서 자기를 꼭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가야 한다고.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도 당신이 필요하다고…선교팀엔 다른 청년들도 있지만 우리 결혼엔 당신이 빠지면 난 혼자 남는다고…가게와 결혼준비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나는 울면서 빌었다. 그러나 남편은 파혼을 하더라도 선교를 가겠다고……. 그 사람들에겐 자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남편은 가버렸다…….
그렇게 또다시 마음 아픈 겨울을 보내고도 나는 그와 결혼을 하였다. 결혼 후 남편의 가게가 시댁 근처에 마련됐다. 남편이 한 일을 못미더워하시며 우리 집 칼 가는 것부터 못 박는 것까지 대신하시는 시아버지, 남편의 수백 만 원 카드대금 청구서, 그리고 시어머니가 남편 통장에 나 몰래 계속 뒷감당으로 돈을 넣어주는 일들…어디 그뿐이랴!

남편을 선택한 것을 수없이 후회했다. 결혼 전에 이미 많이 깨져버렸던 남편에 대한 믿음은 결혼하고 나서는 점점 더 바닥을 향해갔다. 계속된 남편의 거짓말과 배신으로 신뢰는 완전히 사라졌고 결혼생활 내내 나는 악몽과 눈물에 시달리며 살았다. 저녁에 잠들면서 울고, 아침에 눈뜨며 울고, 자는 동안엔 악몽을 꾸고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는 그렇게 살았다. 온통 불안과 분노가 나를 꽉 채우고 있었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하나님 딸이라는 정체성도 다 잃어가면서 나는 내 뺨을 때리며 울면서 죽음을 생각했었다. 정신과 의사와 119 구급대원도 만나보고 세상 도움을 다 구해보아도 그 어느 것도 나를 구해주지 못했다. 희망이 없었다. 죽고 싶었다 .

그러다 부부학교에 들어오게 되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그래, 다음 수업시간까지만 살아보자. 2주만 더 살아보자.'하며 견디던 시간이 지나갔다. 수업을 받던 어느 날, 아무도 내 아픔을 모른다고 생각했던 나를 끌어안고 같이 펑펑 우는 리더 ‘바다'님을 통해 나는 ‘하나님이 이렇게 아파하시는구나. 나보다 더 아파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고, 그때부터 조금씩 나 자신을 추스리기 시작했다. 벼랑 끝에 매달려 있던 나는 그때부터 무작정 리더님을 붙잡았다. 남편과 싸우고 내가 내 자신을 스스로 추스릴 수 없게 되면 우리 부부는 리더님께 전화했고, 그 때마다 리더님은 우리를 불러주었다. 주말이고 주중이고 저녁이고 새벽이고 우리는 응급실 가는 기분으로 리더님 집을 찾아갔고, 리더님이 집에서 차려주는 밥상을 받고 울면서 밥 먹고 울면서 얘기하고 울면서 그분들 집에서 잠을 자곤 했다. 그분들은 마치 빚진 자처럼 우리에게 그저 베풀어 주었다. 나는 서울에 친정을 얻은 기분이었다. 넓은 서울바닥에 시댁식구들만 수없이 많아서 외로웠는데 내게도 서울에 친정식구가 생긴 것 같았다.

수업을 받으며 리더님과 조원들의 피드백으로 우리 귀는 조금씩 열렸다. 내가 남편에게 하던 말이, 남편이 내게 하던 말이 다른 조원들의 입을 통해 우리 부부의 귀에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조금씩 서로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부부에겐 그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힘들어하고 울고 있는 서로의 감정을 느끼는 것…그야말로 서로에게 감정이입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붙잡는 마음으로 죽지 않으려고 리더님을 붙잡았다. 그리고 조금은 넉넉하고 편한 마음으로 남편을 보았다. 그러자 남편이 불쌍했다. 그렇게 6개월의 과정과 두 번의 영성수련이 있고 나서 나는 다시 밝아지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자 세상이 따뜻하고 환해졌다. 무덤 속에 있는 것처럼 캄캄하고 추웠는데 세상이 따뜻해졌다. 다시 세상 속으로 환하게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핸드폰도 다시 켜고 친구들도 다시 만나고 알콩달콩 결혼생활 수다도 떨고…나는 목욕을 한 것 같다. 개운하다.
내 생명의 은인인 가족사랑만들기 리더인 ‘바다님과 나무님,' 많이 힘들고 어려운 시간 내내 내 옆에 있어 주었던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아버지…아버지…저 행복해요 아버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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