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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달라지려고 노력하니 남편이 달라지네요
이름 동산가족센터 작성일 20-06-25 09:58 조회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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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달라지려고 노력하니 남편이 달라지네요
                                   
                                                                             작성자: 큰마음
 
저의 어린시절 나의 가정은 나를 보호하는 안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항상 등에 짊어지고 있는 짐처럼 집에 있는 것이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고 빨리 이 짐을 벗고  탈출하는 것이 늘 저의 꿈이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바람둥이 이십니다. 제가 3살 때  외도로 집을 나가 7년이나 집에 소식도 없이 지내시다가 7년 만에 돌아오셨습니다. 엄마는 아빠 없이 홀로 7년간 어린 셋 딸과 간경화를 앓으시던 고약한 시아버님의 병간호, 술주정뱅이 시동생을 모시고 오직 종교의 힘으로 닥치는 대로 일하시며 저희를 기르셨습니다. 7년이란 생활중 병간호 중이시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지만 아빠는 소식조차 알 수 없어 장례식도 엄마 혼자 다 감당하셔야 했습니다.

그 뒤 7년만에 돌아온 아빠는 우리에게 낯선 존재였지만 엄마가 해주지 못했던 따스함과 다정함으로 금새 우리와 친해지고 늘 맛있는 것을 사주시며 우리에게 잘 대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다시 잘지는 모습으로 살아가던 중 어느 날부터 두 분은 다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에 엄마는 우리 딸들을 불러 놓고 아빠가 지금 다른 아줌마와 있는데 엄마와 함께 가서 아빠를 데리고 오자고 이야기 했습니다. 엄마는 언니를 데려가려고 했는데 그 자리에서 저는 제가 가겠다고 내가 말을 더 잘 할 수 있다고 떼를 써서 결국 엄마는 저의 손을 잡고 택시를 타고 한 여관에 갔습니다. 가는 길에 엄마는 저에게 가서 아빠한테 울면서 우리랑 살자고 왜 여기 있냐고 잘 이야기해야 된다고 일러주셨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알겠다고 잘 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관에 도착해 아빠가 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늘 내게 다정했던 아빠가 다른 아줌마와 함께 앉아있었습니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저는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왔음을 알았습니다. 그땐 이미 늦었고 엄마와 아빠는 막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겁이 났고 한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아빠는 놀란 나를 무릎에 데려가 꼭 안아 주셨습니다. 그렇게 아빠 무릎에 앉아만 있다가 집으로 와야만 했습니다.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엄마는 제게 넌 거기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혼을 내셨습니다. 언니를 데려왔어야 한다하시면서 저를 데려간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저는 아빠가 달라보였습니다. 그 뒤로 아빠는 다시 집으로 오셨고 엄마는 주변 사람들이 아들이라도 있어야 남자는 정착을 한다고 해서 남동생을 낳으셨습니다. 남동생이 태어나고 우리 가족은 그전의 일은 다 잊은 듯 남동생의 재롱과 귀여움에 다른 가정처럼 조금씩 행복해 지는듯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도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또 방황을 하셨고, 아빠가 일해서 벌은 돈은 본인만 쓰시고 우리를 가르치고 기르는 모든 일은 엄마의 몫이었습니다. 결국 엄마는 애 넷을 혼자 기르셔야했습니다. 무책임한 아빠 때문에 늘 등록금이 밀리고 고등학교 때는 근로장학생을 하면서 학비를 벌어서 쓰고 대학때도 야간조교를 하고 대출도 받아가며 스스로 공부해야 했습니다. 저는 늘 돈 때문에 힘들게 사는 것도 싫고 늘 싸우기만 하는 부모 밑에서 지내는 것도 힘들고  싫어서 빨리 집을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결혼이었습니다. 제가 힘들 때 마다 힘이 되어 주신 하나님께 늘 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맞는 신랑감을 만나 빨리 결혼해서 저도 남들처럼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6살이나 많아 결혼 적령기인 남편은 나에게 딱 맞는 조건의 남자였습니다. 하얀 피부에 멋있게 생긴 얼굴, 전도사님 같은 이미지의 남편을 보는 순간 저는 첫눈에 반했습니다. 저가 더 결혼을 위해 애정공세를 했고 남편도 싫지 않은 듯 우리는 사랑에 빠져 제 나이 25살 어린나이에 결혼할 준비가 되어있던 남편과 바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행복했습니다.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남편을 제게 보내주심이 감사했습니다. 저희는 부부는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이 오래 가지는 않았습니다.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게 저희는 다투는 일이 많았고, 아이를 낳고 상황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애들 앞에서도 자주 다투게 되고, 저의 모습은 제 어린 시절 엄마의 모습처럼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잔소리를 하고 자꾸 이것저것 의심하기도 하고 신랑에게 따스하게 말하기 보단 퉁명하게 말하고, 신랑도 다정다감하지 않고 늘 말도 없고 시켜야 말하고, 집안일과 육아는 엄마의 몫이라며 별로 신경 쓰지도 않고, 그리고 늘 자기 자신을 우선적으로 챙기고, 아이들에게도 따스함 보다는 의무적으로 대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내가 알던 나의 아빠의 모습과 닮은 모습들이 보여 지면서 점점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미워하다 못해 증오까지 이르러 같이 못살겠다는 말들도 오가던 중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신랑은 하고 싶지 않았었는데 아이들을 위해서 하자는 제안에 승낙을 해서 이곳에 부부학교 초급과정을 듣게 되었습니다.
부부학교 초급과정을 하면서 저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가계도를 분석하다가 나의 아버지를 용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딸 둘에 아들이 없자 후처를 통해 낳게 된 아들이셨습니다. 본처이신 할머님께서 시샘하셨는지 아빠가 태어나고 이듬해 아들을 낳게 되셨습니다. 그래서 아빠를 낳아주신 어머니는 쫒겨 나게 되셨고, 아빠는 어린 시절 엄마의 따스함을 받지 못하고 자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늘 증오하고 원망하던 나의 아빠는 큰 상처를 지니고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채 지금까지 살아온 성인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나의 아빠가 너무 안쓰럽고 불쌍한 마음이 들면서 용서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용서를 통해 나의 어린 시절이 나를 힘들게 했던 상처들이 조금은 치유가 되었습니다.
 나의 상처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된 남편은 나를 더 어루만져 주었고, 함께 아파하면서 서로에게 더욱 다가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초급이 끝날 때 쯤 머리로는 부부의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것 같았지만 행동이 어려운 우리 부부는 다시 부부학교 중급과정을 가기로 했습니다.
 
부부학교 중급을 하면서 잘해보자 했는데~ 그 동안의 습관들은 쉽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 사이도 좋아지는 것 같다가 또 사우고 늘 원점인 듯 했습니다. 그러던 중 1박2일 부부내면치료를 통해 또 한번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나는 나의 상처만 가지고 힘들다고 했는데 나보다 더한 어린 시절 상처를 가진 남편을 보았습니다. 술만 먹으면 학대를 하시던 아버님과 그 사이에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죽을 만큼의 아픔을 참아야 했던 어머니... 아버님은 벌어온 돈을 본인의 유흥비로 쓰시고 가정을 돌보시지 않았고 어머님은 오로지 큰아들인 제 남편에게 기대와 희망을 걸며 힘듦을 참고 오랜 시간 버티시며 애쓰셨고, 그 속에서 아들인 제 남편은 어머님에게 기쁨이 되기 위해 어머님 말씀을 단 한번 거절하지 않고 본인이 힘들어도 참고 자신의 욕구가 있어도 참고, 자신의 감정을 숨겨가며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음을 알았습니다. 가정의 불화 속에 살던 남편은 중.고시절 우울증도 있었고 친구관계에서 왕따도 경험하며, 그로 인해 지금까지 사람과의 관계 맺는 것도 어려워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편에게 처음 듣는 이야기에 한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그 많은 상처를 나와 나누지 못하고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간 남편이 안쓰러웠습니다. 부부내면치유를 통해 리더님과 조원들과 함께 상처를 치유하며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 뒤로 우리 부부는 서로의 가슴속 깊은 상처를 나누며 한걸음 더 가까운 부부가 되었습니다. 서로 행복한 부모 밑에서 자라지 못한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만큼은 우리처럼 살게 하지 않겠다는 하나의 일치된 목표를 가지고 노력해보기로 했습니다.
서로 애정표현도 아이들 앞에서 일부러라도 더 하도록 하고, 아이들 앞에서는 싸움도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하고, 집안일과 양육도 함께 나누면서 서로의 힘든 것들을 채워주며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교재 그 여자가 간절히 바라는 사랑, 그 남자가 진심으로 원하는 존경에 나오는 에베소서 533절의 말씀처럼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이 말씀에 힘입어 남편을 무조건 존경해 보기로 했습니다. 남편에게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해 줌에 감사함의 편지도 써보고, 나를 늘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표현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의심하지 않고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늘 나에게 먼저 해주길 바랬는데 내가 먼저 해보기로 마음 먹고    내가 해준 것에 대한 보상 또한 바라지 않기 위해 몇 번이고 노력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래도 받은 줄을 앎이라.
 내가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나니 남편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먼저 달라졌습니다. 둘째는 아빠를 너무 좋아해서 뭐든지 “아빠아빠” 엄마보다는 아빠를 더 좋아합니다. 큰 애도 아빠가 좋다고 하고 아빠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아빠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제가 더 행복합니다.    
 
남편이 달라지길 바라며 지켜만 보고 있던 시간들이 어리 섞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아직도 우리 부부는 더 많이 사랑하고, 대화하고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가 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이제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 할 수 있기에 힘든 길이 아닌 행복을 위한 길임을 압니다.
 
 그리고 이제야 압니다. 주님이 9년 전 남편을 만나게 하신 것은 주님이 예비하신 길을 함께 걸어갈 세상에 단 하나뿐이 나의 반쪽을 만나게 하신 것을요..
 
 봄햇살님!
 
나의 남편이 되어 주어 감사합니다.
 나의 아이들의 아빠여서 고맙습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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