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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제 자유롭다.
이름 동산가족센터 작성일 16-11-01 16:48 조회 7,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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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이제 자유롭다

                                                                            작성자: 이혁도(부부학교 수료자)

 

부부학교를 잘 할 수 있게 해주신 박선희 선생님부부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부부학교에서 좋은 책들을 많이 소개 받고 다 읽지는 못했지만 너무나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부부를 세워가는 대화의 기술. 미움 받을 용기. 등등 너무나 필요한 책들을 읽고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부부학교 교재는 많은 책을 읽고 이해하고 거기에서 핵심적이고 꼭 필요한 것을 행동으로 옮겨서 내 것으로 활용 할 수 있게끔 심혈을 기울려 주신 백유현 안인숙 선생님에게 감사드립니다.

특별이 나에게는 나는 누구인가? 나의 성장 배경. 부부의 갈등과 회복. 읽으면서 내가 살아온 과거를 돌아보면서 내가 이런 공부를 좀 더 젊을 때하였으면 내가 지금 보다 더 성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그룹은 다섯 부부 가정 이었습니다.

가정 가정마다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두고서 리더선생님께서 여러 가지 이론과 실제적인 상담경험과 실례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가지고 하나하나 풀어 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학생들의 의견도 물어보고 그 의견들도 다 존중해 주었습니다.

이번 공부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게 되고 재정리 하게 되었고 내가 살아온 과거의 문제점이 어디서부터 오게 되었다.

나의 상처는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그 상처가 내 일생에 어떤 영향을 미쳐 왔는가를 생각 해 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나는 나의 어릴 때 부모님과 형제와 이웃과 환경 속에서 어떤 상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꿈을 꾸어 설가? 이것이 나의 삶속에 어떤 영향을 미침인가? 머리에 입력되고 학습되면서 나의 일생을 좌우하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게 하였습니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앞에는 포구이면서도 멀리는 대마도가 보이고 산위에 오르면 부산도 보이고 진해도 보이고 끝도 없는 수평선과 망망한

대해 바라보면서 자라왔고 여름에는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하고 해초를 캐고 여름이 지나면 세 번 정도 땀띠가 나고 등이 세 번 벗겨져야 여름이 지나가고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추억)

나의 어릴 때 꿈은 멸치 잡는 선주의 꿈이 있었습니다.

선주가 되려면 배가 최소한 7척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조금 자라서는 세계는 다니는 무역선 선장의 꿈이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는 농장의 꿈을 실현하려고 노력도 하였습니다.

이세가지는 어릴 때 보고 자라서 잘 할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육체적인 노동의 일들은 누구보다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엉뚱한 길 목회의 길 상담의 길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아 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후회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 은혜)

 

본래로 돌아가서 상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존경 받지 못할 때 분노 남편은 아내에게 존경을 받고 사는 것은 하나의 상식인줄을 알고 살아 왔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양반이면서도 선비 가정에서 자랐기에 한 번도 나에게 욕설을 하거나 매를 맞아본 기억이 나지 아니합니다. 아버지는 잘못하면 욕과 더불어 매를 때렸다. (반찬 투정 할 때에) 우리 아버지는 부유한 가정의 외동아들이기에 자기 하고 싶어 하는 일들만 살아왔고 아무리 잘못을 저지려도 어머니는 먼저 싸움을 걸어서 다투는 일이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항상 존경하면서 살아온 것을 보면서 자라왔는데 그래서인지 존경하지 않을 때 너무나 화가 난다. (항상 차를 이렇게 개떡같이 세워 놓느냐. 반말을 할 때 __(분노)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집 뒤편 조금 떨어진 곳에 산소가 있고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 있고 이곳에서 매미도 잡고 잠자리도 잡고 노는 나의 놀이 터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그 나무들 속에서 한 그루를 베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마나 섭섭했는지 몰라 습니다. 이유는 내 놀이 테에 내 허락 없이 나무를 베어 벌릴 때 내가 존경을 받지 못해다는 나의 섭섭함이 있었나 봅니다.

 

 

외로움의 상처

모든 사람이 외롭다고 하지만 나에게도 이 외로움이 있고 이것이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누님 두 분 형님 두 분 나와 9살밑에 여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 집은 제일 높은 곳에 자리 잡고 가까운 이웃은 50미터쯤 떨어져 있었고 마을이 형성되어있었다.

그래서인지 부모와 누나 형들이 일하러 가고 학교 가고나면 혼자서 놀 때가 많았고 고구마를 깎아 배의 모형도 만들고 탱크를 모형을 놀 때가 많았다. 그리고 고향을 떠날 때 모든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떠나기에 항상 고향이 그립다. 지금은 찾아가도 반가워 할 사람이 별로 없다.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 외로운가 보다. 항상 고향에는 그리움이 남았다.

 

인정받는 주제

나는 6남매 중에서 5번째이다.

그래서 한 번도 새 옷을 입지 못하고 형들이 입던 옷만 물려받았다.

한번은 6살 쯤 되었어. 새 옷. 무명으로 지은 옷 한 벌을 입게 되었는데 너무나 좋아 옷에 행여나 떼가 묻을 가 봐 놀지도 못하고 양지바른 집 모퉁이에 쭈그리고 있는 모습이 새삼 생각납니다.

 

어릴 때 제삿날이었습니다. 집안사람들이 많이 왔어 제사 음식을 장만 하는데 나는 가까운 산소에서 솔 나뭇잎을 갈비대로 모아 한 짐 지고 내려왔다 이것을 본 친척이 저 애는 나무을 지고 온다는 칭찬의 말이 너무나 뿌듯하였다.

 

정월보름 어느 해였습니다. 내 나이 16세 때. 다른 친구들은 다 놀고 있는데 나는 학교에서 배운 데로 병아리 부하하는 것을 배워 병아리를 부하하여 병아리 키우기 위해 닭장을 만들고 있을 때 우리 고모님이 하시는 말씀 제 애는 놀려도 안가고 닭장 만든다고 칭찬 할 때에 너무

기분이 좋은 기억이 생각납니다. 막내로 태어나 한마디의 인정받고 칭찬 받는 것에 굶주려 있었나 봅니다.

부부학교를 하고나니 살아온 과거에 대한 회상을 하면서 내 속에 있는 마음의 상처를 다시 보고서 치유가 되니 옛 기억들이 새롭게 정리된다. 예전에서는 상처들이 날 힘들게 하였고 내 아내와의 관계 속에서는 아내에게 아픔을 주었다.

난 이제 자유롭다.

난 이제 새롭게 살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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